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문단 편집) == 언론 보도 == 이 사고를 먼저 보도한 곳은 1995년 3월 1일 케이블 방송 출범 이후 당시 막 개국한 [[YTN]]이었다. YTN은 18시 뉴스를 시작한지 3분 만에 앵커의 멘트로 사고 소식을 전한데 이어 4분쯤 사고현장 인근 삼호가든아파트 주민의 제보 전화를 연결, 사고 소식을 상세히 전했다. 이 사고를 최초로 보도한 이상순 YTN 기자가 사고 20년 뒤 YTN 뉴스 인에 출연해 이를 회고했는데[[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SD&mid=tvh&sid1=129&sid2=5ae&oid=052&aid=0000695936|#]] 당시 초년 기자였던[* 동년 5월 1일에 입사했다고 한다.] 그는 백화점 바로 앞인 [[서울가정법원]][* 사고 당시에는 서울가정법원이 현재의 서울중앙지방법원 1별관[[http://dmaps.kr/7nh53|#]] 내에 있었다. 2012년에 양재동으로 이전했다.]이 출입처였다. 그날도 가정법원실에 모여 기자들과 같이 판결문을 보고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18시 즈음 바깥이 웅성거려 복도 쪽 창을 보니 '''백화점 건물 한 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길로 바로 회사에 "'''삼풍백화점 반이 날아갔습니다.'''"라고 전화를 건 뒤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뉴스 진행자인 [[호준석]]도 이야기를 전했는데, 당시 [[조순]] 민선 1기 서울시장 당선인의 [[서울메트로|당시 서울지하철공사]][* 해체 전까진 서울메트로였던 서울지하철공사가 [[서울도시철도공사]]와 합병되면서 해체되었다. [[서울교통공사]]가 합병 후 후신이다.] 방문을 따라갔다가 회사의 연락을 받고 사고 현장으로 차를 몰고 갔는데, 하필 무너지지 않은 B동 쪽으로 들어와서 반대쪽(A동)이 무너진 것을 못 보고 "어? 멀쩡한데요?"라고 회사에 전화했다가 온갖 욕을 다 들었다. 물론 그 욕을 들어가며 코너를 돈 직후 한쪽이 없어진 걸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같이 참석한 경광숙 당시 도봉소방서 구조대장[* 최후 생존자 3인 중 첫 테이프를 끊은 최명석 씨를 구출해 낸 분이기도 하다.]은 같은 날 휴일이어서 책자 발간을 위해 [[경복궁 광화문|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나오던 중, 마침 사이렌을 울리며 출발하는 [[동아일보]]의 취재 차량을 얻어타고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동아일보 사옥이 있는 세종로사거리에서 사고현장인 서초동까지는 아무리 빨리 잡아도 20~30분이 걸리나, 이들이 찍은 시간은 '''불과 7분'''이었다. YTN의 사고보도에 이어 지상파인 [[SBS]]와 [[KNN|부산]], [[TBC|대구]], [[광주방송|광주]], [[대전방송|대전]]의 지역민방[* 당시 SBS의 지역민방은 이제 막 개국한 지 얼마 안 된 1995년 5월 14일이였으며 이외에는 개국 전이었다.]이 18시 4분 만화 영화 <[[명탐정 셜록하운드]]> 방송 도중 자막으로 사고 소식을 전했으며, [[KBS1]]은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를 방송하던 18시 5분에, [[MBC]]는 만화영화 '개구쟁이 태즈' 방영 도중 "MBC 뉴스속보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인명피해가 클듯" 자막이 뜬 후 프로그램이 끝남과 동시에 바로 [[https://youtu.be/Zzr-3SReNKU?t=147|MBC 뉴스속보]]가 나왔다. 그리고 곧 5분 뒤 사고발생을 보도한 뒤 KBS, SBS, MBC 3사 모두 사고보도를 내보내 도합 100시간 이상 생중계됐다. 사고 현장 화면을 가장 먼저 내보낸 곳은 KBS였다. KBS는 사고 발생 소식을 접한 뒤 뉴스 중계차를 파견했으나 중계장비 설치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현장 화면을 녹화한 다음 오토바이로 테이프를 수송해 18시 30분쯤 현장 화면을 방영했다. 이어 MBC, YTN, SBS의 현장 화면 보도가 각각 10~20초 간격으로 잇따랐다. 각 방송사는 중계차 4~8대를 사고현장및 병원에 대거 동원해 18시 40분쯤부터 구조 현장을 생중계했다. 위 개요란에 있는 뉴스 특보 방송 영상은 사고 직후인 7시 전후에 방송된 듯하다. 방송 3사는 사고 직후부터 이튿날인 30일 저녁까지 만 하루 동안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사고현장을 중계했다. 이 당시에 여기저기서 벌어졌던 대형사고 보도치고는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두 달 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당시 [[서울 공화국/문제점/언론의 지방 외면|축소 보도 시비에 시달린 점]]을 의식한 방송사들이 오명을 벗으려는 움직임이었던 모양이다. 대구 참사 당시 공보처[* [[문화체육관광부]] 본부 산하의 국민소통실의 전신이다. 단, 방송관련 업무는 [[방송통신위원회]]로 이관되었다.]의 불허와 뉴스 비중 미달을 이유로 연장방송을 하지 않았던 MBC는 공보처에 신고를 생략하고 연장방송을 자체 결정해 대조되었다. 주말 예능들 다수도 이 주간에는 일제히 결방하였다.[* 단, KBS는 추모방송이 길게 이어질 경우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일요일부터 정상 방송되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3090508#home|#]]] MBC와 SBS는 각각 토요일([[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vs.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 [[무등 야구장|광주]])과 일요일([[삼성 라이온즈]] vs. [[LG 트윈스]],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에 예정된 [[KBO 리그|프로야구]] 중계까지 사실상 취소하였다. 사고 당일 밤 뉴스 속보 시청률은 동시간대 평균 시청률 41.0%를 훨씬 뛰어넘는 58.8%이었다. 방송시작 30분 만인 18시 45분 44.3%(평균 시청률 28.7%)로 치솟은 이날 시청률은 22시 70.7%(평균시청률 49.3%)로 절정을 기록했다. 또 평소 시청률이 0.8%에 불과한 1시 15분에도[* 당시 지상파 평일방송은 보통 다음날 0시쯤 끝났다.] 21.1%에 달해 적지 않은 국민들이 밤새 사고방송을 지켜봤음을 증명했다. 한편 이 사고를 세상에 처음 알린 YTN은 구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광고방송을 일절 중단하고 사고 방송만 내보냈다. 이 당시 실종자 현황을 당시 서울시 대책본부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YTN 독자적으로 집계했고, 기자가 취재하러 잔해더미에 들어갔다 생존자를 사고 7시간만에 구출해내는 등 여러 성과를 거두어냈다.[* 이때 무너진 백화점 주변의 옷들을 훔치면서 웃는 아줌마의 모습도 포착됐는데, 윗 문단의 사진이 YTN에서 촬영한 것이다. 그 웃음이 상당히 섬뜩하여 종종 언급된다.] 또 최후의 3인 중 두번째인 유지환의 생존 속보를 먼저 보도하는 등 개국한 지 석 달 만에 뉴스 채널의 이미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하고 있던 서울교대 체육관에 YTN을 틀기 위해 긴급하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904009|케이블 TV 망을 뚫기도 했으니]] 말 다 했다. 이런 개가에 신난 당시 YTN의 주인이던 [[연합뉴스]]는 매일매일 홍보성 기사를 작성하며 그 치적을 남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iWXnG3L_gHI|20년 뒤 당시 YTN 취재진의 회고다.]] 이번 사고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장비는 로봇카메라였다. 직경 50 mm, 길이 200 m짜리 케이블 끝에 어둠 속에서도 물체를 발견할 수 있는 CCTV를 설치한 이 카메라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29일 밤에만 백화점 지하 1층에 깔려 있거나 갇힌 생존자 10여 명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 구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TAP 전자산업이 제작 운용했던 이 장비가 구조현장을 생생히 보여주자 현장에 접근하지 못한 각 방송사들은 이 화면을 그대로 받아 생방송으로 내보내기 위해 선점경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당연히 이 또한 문제가 되었다. 이번 방송에서는 현장을 한눈에 보여주는 항공촬영도 한몫 했다. KBS는 지난 3월 새로 구입한 항공 촬영용 신형 헬기로 가장 안정된 화면을 방송할 수 있었다. 기종은 벨230으로 동체 전면에 특수카메라 웨스캄을 탑재했다. MBC 역시 자체 헬기로 항공 촬영을 했으며 SBS와 YTN은 경찰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현장의 모습을 전했다. 당시 재난방송은 '랜턴, 절단기, 곡괭이, 들것 등이 필요하다.'는 안내방송, 추가붕괴에 따른 인근 아파트주민 대피령, 헌혈지원 등을 속보로 방송한 것이 실례며 자원봉사자, 주민들의 복구지원·구호활동을 수시 방영해 시민정신을 북돋아 성수대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등 그동안의 재난방송들보다 한 단계 진일보했다는 평과 함께 발빠르고 성실했다는 평을 들었다. 문제도 만만찮았다. "갇혀있던 생환자가 밖으로 나오면 눈이 부셔 실명케 돼 담요로 감싸고 있다."고 말하면서 화면에는 생환자 얼굴에 눈부신 조명을 비춘다거나, 구조작업을 벌이는 비좁은 공간에서는 산소가 부족하기 마련인데 거기까지 취재진들이 들어왔다거나, 구조대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마이크를 들이대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위에서 얘기한 지나친 항공취재 경쟁에 따른 헬기의 소음으로 후속 붕괴가 우려되기도 했으며 구조대원들의 목소리나 생존자들의 구조 외침이 소음에 묻혀 구조활동에 장애가 되기도 했다. "소방헬기로 저건 물을 뿌려야 된다.", "저 사람은 산다, 못산다." 등 지나치게 성급한 예단도 있었다. 하지만 초기에 생환자들이 어느 병원으로 이송되었는지 알려주는 필요정보는 충분치 않았다. 포털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검색어를 이용해 오래된 기사 순으로 검색하면 그 당시 연합뉴스가 된 연합통신에서 출고된 기사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고현장의 시간별 상황이나 피해자 구조·치료 현황, 자원봉사 현황, 사고 원인에 관한 기사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출입하던 정부 부처의 분위기를 다룬 스케치 기사, 사고 직후 PC통신에 올라온 글들도 기사화했다. 기사가 올라온 시각을 보면서 읽다 보면 당시의 긴박하고 참혹했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삼풍 보도논조가 불쾌한 듯한 태도를 취했다. 7월 14일자 한국방송노조건설준비위원회 기관지 <방송노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9393|#]] 7월 4일 [[이원종(1939)|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롯데호텔 서울]]에서 지상파 방송 3사 사장들을 불러 "삼풍 등 여러 재해 사건사고에 대해 국민 여론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집중된 건 언론 탓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모임 이후 각 방송사 뉴스에서 삼풍사건 미담 위주 연성보도 횟수가 늘고 5일에는 <뉴스위크> 아시아판 10일자 일부 내용을 크게 과장해 '대통령 무책임론'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http://news.kbs.co.kr/news/view.do?ncd=3752618|#]] [youtube(zVxN744TqGs)]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고 21일이 지나서야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이카면 되겠제"'''[* "그래 그럼 되겠제?"라고 들리기도 한다.] 발언이 나왔다.[* 당연히 방송이 다 끝난 뒤 참모에게 개인적으로 한 말이다. 방송이 나가는 중인데 대놓고 저런 말을 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댓글을 보면 김영삼을 성토하는 댓글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